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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lo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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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형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출근 - 일 - 퇴근 - 가족 - 집에서 일 - 수면 패턴을 적용해보면 그나마 가족과의 저녁 시간이라도 있어 한국형인 출근 - 일 - 야근 - 퇴근 - 수면 보다는 나았다. 그치만 이것도 일 사이에 가족이 끼어있어 가족과의 시간이 초조하게 느껴지고 일을 방해하는 시간인 것처럼 되기 쉬웠다.
수년째 출근시간 보다 1시간 일찍 나오는 걸 고수하고 있었는데 이걸로는 부족한 업무 시간을 보충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아 몇 달 전부터 3시간 쯤 일찍 출근을 시도중이다. 그리고 정시에 퇴근하는 것으로. 이러면 하루에 12시간 쯤 회사에서 일을 하지만 저녁 내내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어 좋았다.
저녁은 가족 모두가 걸린 시간이니 내가 무슨 권리로 아끼겠나마는 새벽은 나의 시간이라 내 잠만 조금 줄이는 것으로 가족에게 희생을 요구하지 않아도 됐다.

알게 된지 얼마 안 됐는데 네 번째 상담을 해달라는 후배가 있어 같이 국수를 먹었다. 내가 나름의 해결점을 찾아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듣는 게 가장 좋은 상담이라고 알고 있다. 후배는 먹다가 한참 말을 하다가 다시 먹다가 다 먹었다는 듯 마시던 물을 그릇에 부었는데 이야기하다가 그것도 잊어버리고 다시 먹었다. 말해줄 걸 그랬나.

세 번째 만났을 때 후배가 겪고 있는 상황을 듣고 공감하고 같이 정리해보며 ‘어떻게 하라고 하든 넌 아마 마음대로 할 걸?’하고 별 조언은 안 했는데 역시나 그때 고민들은 다 지나간 일- 모두 잊었고 지금은 그 다음 단계의 고민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도 별다른 말은 할 필요가 없다.

우린 뭐하러 만나고 뭐하러 밥을 먹는 걸까. 상담이란 단어는 왜 붙일까. 고민이란 건 또 뭘까. 그냥 들어줄 사람만 있어도 해결되는 문제들. 가르치지 않아도 될 걸 가르치려 들지 않는 것. 대화는 해결을 발견하는 과정이지 해결을 받으러 가는 방법은 아니니까.

어릴 적 만화영화에서 주인공들은 적의 기지에 쳐들어가 거길 지키고 있는 악당의 경호원들을 망설임 없이 척척 쓰러트리곤 했다. 언제부턴가 이런 장면들이 부당하게 보였다. 악당 밑에서 일한다고 모두 악당으로 취급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사회에 나와서 배웠다. 많은 피고용자들은 자신의 일터에 동의하지 않는다. 경제 활동으로 삼을 뿐이다. 부도덕한 일을 저지르는 기업에서 일한다고 모든 직원들이 기업과 경영자의 부도덕에 동의하는 게 아닐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얼굴도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쓰러져 간 모든 악당의 부하들에게 경의를. 그들이 비록 악당을 지켰지만 속으로는 그를 증오했을지도 모르고 그들이 악당을 위해 일했던 건 가족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자본주의적 비극은 어디에나 있다. 어디든 뽑아만 주면 일하게 된 요즘 세상에서 누가 직장 하나 잘못 잡았다고 죽어도 싸냐는 반문이다.

일 년 전쯤에 주로 사용하던 SNS들을 관두었다.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있다고 쓰고, 요즘 이런 생각을 한다고 쓰고, 누굴 만났다고 쓰고 하는 것들이 그걸 보는 사람에게 나와의 관계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정보를 쌓아주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또 그렇게 써먹는 꼴을 보니 더욱 그러기 싫어졌었다. 나는 웹상에 공개된 존재가 아니고 싶었고 누군가 나를 생각할 때 막막한 느낌이 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