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ll Theme

Telostory

\

디자인은 아트가 아니다. 이런 류의 이야기를 볼 때마다 짜증이 난다. 디자이너를 핀잔주고 싶은 사람들이 꼭 하는 말이다. 디자이너와 손쉽게 인연을 끊고 싶으면 니가 아티스트냐? 하면 된다. 나도 참 많이 들었다. 억울하진 않다. 나는 스스로를 아티스트로 인식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디자이너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분명한 목표를 인식하고 사용자를 중심으로 일한다고 하더라도 스스로를 예술가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절대 매력있는 제품은 나오지 않는다. 여전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품인데도 매력이 느껴지지 않아 버려 본 경험이 누구라도 있을 텐데.
밸런스의 문제다. 어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느 부분에서 어느 쪽을 조금 더 포기할 것인가를 생각할 일인데 왜 디자인은 아트가 아니라고만 하는 건지 짜증스럽다. 이건 마치 먼저 시집간 언니가 무슨 벼슬이라도 한 듯한 눈으로 동생을 내려다보며 ‘결혼은 환상이 아니야. 결혼은 현실이야.’하는 뭐 이런 살 맛 없는 이야기 같다.

좋은 식탁을 대할 때마다 나보다 훨씬 자격 있음에도 이렇게 식사하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미안한 맘이 든다. 그렇다고 이 그릇을 그들에게 양보할 생각은 전혀 없으면서. 모순덩어리.

워낙 잠을 잘 자는 신체와 정신을 타고 나서 잠이 오지 않는 밤은 몇 번 없었다. 그 중 한 번은 창업을 결심했던 밤이었다. 설레임과 흥분에 잠을 못 이뤘다. 그렇게 설레는 밤이 또 올까.

창의력은 잉여의 시간과 공간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나에게 잉여의 시공간을 줘봐도 난 아무것도 창의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하나의 변수가 더 있지 않을까. 지치지 않은 마음. 요즘의 나는 비 맞은 장작더미 같다. 배울 것도 많고 배우려고 사둔 것도 많은데 그냥 하던 것만 반복하고 있다. 모든 게 눅눅하게 느껴진다.

커다란 일에 여러 사람들과 함께 도전하다 보면 목적를 이룰 것인가 사람을 얻을 것인가 선택하는 순간이 와서 힘들다. 물론 모두 함께 힘을 합쳐 목표를 달성하면 가장 좋겠지만 그런 조직은 단순히 일 때문에 모인 경우가 아닌 경우가 많았다. 신념이라던가 혈연이라던가. 여튼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일하다 보면 꼭 그런 선택을 해야하는 순간이 온다.

5년 전 즈음 대학에서 만난 10명 정도가 꽤 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각자 돈과 시간을 크게 투자했다. 나는 리더로서 목표에 대한 중압감이 커서 그 선택의 순간에 결국 모두를 잃고 목적을 이뤄버렸다. 그런 선택이 있는 줄도 몰랐다. 나에겐 그게 당연하게 생각 되었으니까. 결과물을 필요로 했던 사람들로부터 박수는 받았지만 함께 했던 사람들은 크게 상처를 받고 떠났다. 나를 떠났다. 그들끼리는 아직 서로 친하게 지내고 있으니까. 

결국 일 때문에 모였는데 왜 그럴까. 이 철없는 생각에 처음엔 그들의 유치함에 대해 비난하곤 했다. 하지만 그후로도 숱하게 사람들과 모여 무언가를 하면서, 똑같은 어려움에 반복적으로 마주치며 나름의 결론을 갖게 되었다. 항상 사람을 택하는 편이 나았다. 그렇게 하면 내가 훨씬 더 고생스럽고, 내가 훨씬 더 무능한 존재가 되며, 무시당한다. 하지만 이런 고통은 사람을 잃는 것에 비할 것은 아니었다. 사람이 수단이 되는 일을 묵과해선 안 되었다.

첫 사회생활을 마무리할 때, 당시 진행하던 프로젝트의 외부 인사가 면담을 하자고 했다. 왜 나가려느냐? ……우리 보스는 사랑이 없으시다. ……사랑이 없다고? 그분은 박장대소까진 참으셨지만 이 사회 초년생의 감상적인 발언에 대해 어이 없는 표정은 숨기진 못하셨다. 혹은 그도 너무 오랜만에 ‘사랑’이란 단어를 상기하다 보니 그게 비웃을 단어가 아니란 사실을 잊었을지도.

그분은 자신도 꽤 바쁘게 많은 일을 많은 사람과 하고 있고, 나의 보스와도 그렇게 하고 있다며 그 과정에서 희생을 감수해야지 지금 사랑 찾을 때가 아니라고 하셨다. 재밌는 것은 그 조직이 NPO였고 소위 말해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곳었다. 내가 좀 과격하게도 또 유치하게도 ‘사랑’이란 단어를 끄집어 낸 것은 그 점을 비난하고 싶어서였다. 그분이 하신 말은 나는 언젠가 다시 그에게 해줄 것이다. 그렇게 말했던 사실이 부끄럽지 않냐고. 아님 말고. 그리고 그 보스께선.. 나같은 사람 10명은 잃고도 아직 변함이 없으신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또 발견하고 싶다. 요즘 내가 속한 사회의 관계란 이미 몇 겹씩 갑옷을 입은 사람들이 서로 만나 대충 그 갑옷이 어떠네 저떠네 거슬리지 않게 쓰다듬어주며 적정선을 잘 유지하는 게 관건이다. 어떤 사랑스러운 존재가 나의 껍데기를 침투하고 들어왔으면 한다. 혹은 내가 철없이 벗은 몸을 던져 보여도 태연할 누군가를 만나졌으면 한다. 속이 뜨거워서 밖으로만 만날 수 없는 사람. 밥 한 끼 할 게 아니라 집으로 불러야만 하는 누군가를 또 발견하고 싶다. 그렇게 만난 사람이 또 상처가 되더라도.

현존하는 IT서비스 중에 가장 아름다운 건 Medium이다. 인쇄물을 디지털로 옮기겠다는 수 많은 프로젝트가 있었지만 이렇게나 완벽하게 인쇄물의 아름다움과 디지털 리딩의 새로운 경험을 접목시킨 서비스는 없다. 어느 기기를 통해 보든 완벽한 레이아웃과 타이포그래피, 에러 페이지에 나오는 레터링조차 캡쳐해서 소장하고 싶을 지경이다. 에반 윌리엄스는 트위터를 만들 땐 단문의 경험이 어떠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고 Medium을 만들면서는 장문의 경험이 어떠해야 하는지 정말 잘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