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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lo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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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는 연습도 없고 설명도 없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모든 사람에 대한 실전이었다. 모든 관계는 진짜 사람을 대상으로 한 현실이었고 진짜 사람에게 상처주고, 진짜 사람을 옭아매고, 진짜 사람을 증오하며 배워야만 했다. 이 모든 관계의 기록은 운동 선수의 경기 결과처럼 내 관계 이력에 차곡차곡 쌓여 지울 수도 없었다. 이 불합리를 항의하고 싶었지만 누구에게 해야 할 지 몰랐다.

가장 씁쓸한 학습은 사랑이었다. 사랑은 갑작스런 폭설처럼 온 세상을 다 덮고 더이상 바위도 강도 볼 수 없을 것처럼 굴었다. 순백색 세상에 흥분한 내가 눈덩이 하나를 굴리기 시작했을 때- 이 덩어리는 앙증맞은 행복을 주었다가 어느 순간 내 덩치보다 커지고 제 멋대로 굴다가 결국 나를 깔아 뭉개고 굴러 떨어졌다. 눈이 그치고 다시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아 이게 사랑이구나. 터덜 거리며 돌아와 젖은 옷을 말리는 난로 가에서 깨닫는 것이었다. 다신 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가도 계절이 바뀌고 다시 그렇게 포근한 척 하는 얼음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면 난 또 밖으로 나갔었다. 그렇게 몇 해를 거듭하며 사랑은 봄이 아니라 겨울인 것을 배웠다.

감사합니다는 좀 과한 것 같고 고맙습니다는 왠지 격이 없어 보인다. 중간 쯤 되는 단어를 하나 만들 수 없을까. 사랑합니다는 너무 오버고 좋아합니다는 실속이 없다. 이것도 중간 쯤에 새로운 단어 하나가 필요하다.

성인이 되기 전에 친구들과 주고 받은 편지들이 한 박스 쯤 박혀 있는데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음은 버리기로 했는데- 버리려면 좋던 싫던 그 박스를 열고 한없이 유치한 모양과 색깔의 편지봉투들과 그 껍데기에 젤러펜으로 쓰여있는 개발새발의 발신자와 수신자 이름, 그것도 모자라 형형색색의 에폭시 스티커, 라미네이팅 스티커들이 붙어있는 광경을 봐야만 하는데.. 그게 용기가 나질 않는다. 그 광경을 보고 나면 최소한의 호기심에도 봉투를 열게 될거다. 나의 유치했던 시절을 더 미워하게 되면서 동시에 그 시절을 함께 했던 그들은 지금 뭘하고 살까. 잠시라도 떠올리게 될거다. 딱 잘라 그게 싫다. 남에게 버려달라고 할 수는 더더욱 없고, 언젠가 내가 버려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말로 상대에게 자극을 받으면 눈 앞에서는 아무 말 못하는데 하루 종일, 또 며칠씩, 혹은 몇 달이고 내가 그때 할 수 있었던 말들을 찾아내고 그렇게 말했다면 그 사람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 뭐라고 되받았을까 상상한다. 의미 없는 일이지만- 달리 다른 식으로 해결할 수 없기도 하다. 대화가 되는 사람이었으면 그 자리에서 말이 안 나오지 않았겠지.

사람은 모두 자기만의 달콤함이 있는 사탕같다. 만나고 이야기 나누면 스윗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계피맛만 피하면 된다.

비가 정말 시원하게 내린다. 어렸을 땐 우연히 비를 맞는 것에 대해 근거 없이 좋은 감상이 있었다. 우습지만 굳이 우산도 없고 차비도 없는 척 집으로 걸었다. 지금은 그냥 옷이 젖고 우산을 들고 다녀야 하는 불편한 날일 뿐이다.

두려운 게 많아진 건 소중한 게 많아진 것이기도 하지만 ‘소중함’의 인플레이션이 심해졌을 뿐 진짜 소중한 무엇 하나 가지고 있진 않다. 나에게 젖지 않은 바지 끝이 언제부터 소중한 것의 대열에 올랐을까. 

영화 호빗에서 간달프가 빌보 배긴스에게 ‘언제부터 어머니께서 물려주신 그릇이 그렇게 중요해졌지?’하고 꾸짖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그렇게 마음에 와 닿았다. 진짜 삶 보다 장식장에 진열하는 껍데기에 대한 집착.

나에게도 영화에서처럼 진짜 삶을 살자고 내 골방에 찾아와 장식장을 쓸어버리고 창고를 다 비우고 그릇을 깨트리고 있는 분이 있긴 하다. 그래서 난 분명 같이 여행을 떠난 것 같았는데 어느새 또 내 살림을 꾸리고 있다. 난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

실리콘밸리형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출근 - 일 - 퇴근 - 가족 - 집에서 일 - 수면 패턴을 적용해보면 그나마 가족과의 저녁 시간이라도 있어 한국형인 출근 - 일 - 야근 - 퇴근 - 수면 보다는 나았다. 그치만 이것도 일 사이에 가족이 끼어있어 가족과의 시간이 초조하게 느껴지고 일을 방해하는 시간인 것처럼 되기 쉬웠다.
수년째 출근시간 보다 1시간 일찍 나오는 걸 고수하고 있었는데 이걸로는 부족한 업무 시간을 보충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아 몇 달 전부터 3시간 쯤 일찍 출근을 시도중이다. 그리고 정시에 퇴근하는 것으로. 이러면 하루에 12시간 쯤 회사에서 일을 하지만 저녁 내내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어 좋았다.
저녁은 가족 모두가 걸린 시간이니 내가 무슨 권리로 아끼겠나마는 새벽은 나의 시간이라 내 잠만 조금 줄이는 것으로 가족에게 희생을 요구하지 않아도 됐다.